제이드가든

완전보다 온전(1) 가디사의 꿈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15살 소년, 가디사 입니다.
일 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졸지에 한집안의 가장이 된 소년입니다.
여느 나라, 여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 구성원들의 일상과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더군다나 죽음의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충격과 함께 허탈함과 억울함이 겹쳐져
살아가는 것이 몇십배 더 힘겹고 고달파 질 수도 있을 겁니다.
무엇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냐는 질문에,
모른다, 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가디사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눈떠보니 서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던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빈자리는 가디사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넓고 황량해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궁핍했던 가게는 하루가 다르게 더욱 더 궁핍해져 갔으며,
가족들은 이제 끼니를 거르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 보였습니다.

 

 

 

 

가디사 가족들이 사는 집은,
가난하다는 단어가 사치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었습니다.
네, 그랬어요.
가디사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닌 공간이었어요.
얼기설기 쌓아올린 짚더미로 겨우 바람만 막을 수 있는 ,
행여, 강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날이면, 
혹시나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가디사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그냥 허허벌판이 되어버리겠죠.
다리 뻗고 누워 자는 것은 고사하고 편히 등을 기댈 수 있는 방도 없는 집,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이 있는 주방은 커녕,
먹을 수 있는 양식도, 몇 알의 옥수수 알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도,
아니, 방과 주방이라는 개념조차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공간에서
가디사의 가족들은 전 재산인 한 마리의 양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가축이 사람이 사는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축의 우리에서 지내는 형상이었습니다. 
감히 카메라에 담아 올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살고 있어도, 
15살의 나이는 예민한 나이이니깐요.
내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행여 가디사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약,
나라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가난을 누군가가 카메라에 담는다면,
분명 자존심 상해 했을테니깐요.
가디사도 그럴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는 왜 가디사의 가난을 가디사의 부끄러움으로 생각했을까요?
가디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어쩜, 그건 우리의 부끄러움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모르겠어요.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가디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얘의 운명이라고 순간적으로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비록 찰나적인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나의 본래의 모습일지도 몰랐으니깐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죠.

 

가디사의 가족들입니다.
엄마와 마악 걷기 시작한 막내동생, 그리고 세살 터울인 누나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의 여자로 태어나 몸고생,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치더라도
열여덟, 열다섯, 세살의 남매를 둔 엄마라고 하기엔 가디사의 엄마는 너무나 늙어 보여서 좀 놀랬습니다.
그래서 가디사에게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엄마 라고? 진짜야?
가디사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마 라고 했습니다.
그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으면 그럴 수 있을꺼야.
눈에 보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라고 머리로는 생각은 했지만 입은 자꾸만 그녀의 나이가 물어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염치 불구하고 나이를 묻는 나에게 그녀는 마흔이라고 했습니다.
네? 마흔이라고요?
놀라고 있는 저를 멀뚱이 바라보고 있는
여든의 모습으로 늙어있는 마흔 여인의 눈빛을 마주볼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마흔이 된 여인의 깊은 주름에 나는 왜 그렇게 놀랬을까요?
마흔 여인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었는지.
정작 내가 놀라워해야 되는 사실은,
누군가가 지금 이시간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인데 말이죠.

 

 

 

 

 

일년 동안 한벌의 옷만 입고 있는 가디사 남매를 위해,
입고 간 옷을 벗어주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중에,
겨우 입고 있는 윗옷 한 벌만을  벗어주었을뿐이었는데,
가디사 남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받은 것처럼
고마워하면서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가디사가 웃어 주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고 가슴이 묵직하니 아파옵니다. 
가디사의 찢어진 바지가 끝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내 눈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영양실조로 퉁퉁 부어올라 있는 가디사 누나의 갑상선이
무거운 망치처럼 내 가슴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벗어줄 옷 한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애써 위안을 해봅니다.
비록 내가 저 남매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래도 가디사 남매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적어도,
난 가디사의 꿈이 무엇인지 아니깐요.
그래서 마음만큼은 그 소년의 꿈을 위해 빌어줄 수 있으니깐요. 
15살 소년 가디사의 꿈은, 밥걱정 하지 않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랍니다.

 

 

 

 

 

가디사가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입니다.
부디 가디사가,
뜨거운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주는
뿌리깊은 든든한 나무같은 사람이 되어주었음 좋겠습니다.
오늘의 고통이
가디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꺼라고 애써 믿어보고 싶습니다.
기도 외에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가디사 보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나의 이기적인 믿음일지라도 말이죠.

 

 

*

 

 

 

 


119애드 이사코리아 꼬맹사랑 이동갈비 향기나는 모바일얼라이언스 쭈니의 마을 날개 없는 새 바니쭈쭈 오일토피아
2012/05/20 13:32 2012/05/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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